코드를 공개해도 무너지지 않는 비즈니스 설계: 검로드와 MoR 모델이 주는 교훈
개발자로서 개인 프로젝트나 SaaS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깃허브(GitHub) 레포지토리를 프라이빗(Private)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공들여 짠 비즈니스 로직, 결제 연동 코드, 최적화된 DB 스키마가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경쟁자가 나타나 내 파이를 뺏어갈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죠.
하지만 5년 차 개발자로 현업에 있으면서, 동시에 밤에는 서비스를 빌드하는 인디 해커로서 저는 최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서비스의 생존은 코드의 비공개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글로벌 디지털 자산 판매 플랫폼인 검로드(Gumroad)입니다.
소스 코드가 공개되어도 상관없는 서비스의 조건
검로드는 자신들의 핵심 소스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누구나 코드를 내려받아 로컬 환경에서 구동할 수 있고, 원한다면 똑같은 UI와 기능을 가진 서비스를 배포할 수도 있습니다. 개발자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자신의 성벽을 스스로 허무는 자살 행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검로드의 매출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이들이 코드를 공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로그램 자체가 서비스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검로드의 진짜 가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가 담고 있는 법적 지위와 행정적 대행 능력에 있습니다.
핵심 비즈니스 모델: 세무 신고 대행과 MoR(Merchant of Record)
검로드의 사업 모델을 기술적으로 정의하자면 단순한 결제 솔루션이 아니라 MoR(Merchant of Record), 즉 판매 기록상 판매자 서비스입니다.
우리가 스트라이프(Stripe)나 일반적인 PG사를 쓸 때는 결제 기능만 빌려 쓰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각 국가별 부가가치세(VAT) 계산, 신고, 납부의 책임은 오롯이 개발자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전 세계 수십 개국의 세법을 개인이 팔로우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검로드는 이 지점에서 법인으로서의 해자를 구축했습니다.
- 사용자가 검로드에서 제품을 팔면, 세법상 판매 주체는 검로드가 됩니다.
- 검로드는 전 세계 국가의 세금 징수 및 납부 허가를 법인 차원에서 획득했습니다.
- 복잡한 글로벌 세무 이슈를 검로드라는 법인이 대신 독박을 써주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드가 공개되어도 상관없는 이유입니다. 누군가 검로드의 코드를 복제해서 사이트를 열 수는 있지만, 검로드가 수년간 쌓아온 글로벌 세무 네트워크와 법적 허가권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개발자가 아닌 법인으로서의 권한에 집중하라
저도 직접 서비스를 만들며 삽질해 보니 알겠더군요.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는 것과 비즈니스가 지속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프로그램은 언제든 더 나은 코드로 대체될 수 있지만, 법적으로 허가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은 강력한 진입장벽이 됩니다.
1인 창업가가 코딩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비즈니스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술이 아닌 법적/운영적 지위를 고민해야 합니다.
- 법적 허가와 라이선스의 힘: 금융 서비스, 의료 데이터 처리, 세무 대행 등 특정 자격이나 허가가 필요한 영역은 코딩 실력보다 법적인 자격 획득이 더 큰 해자가 됩니다.
- 현실 세계와의 연결성: 온라인의 데이터가 오프라인의 행정 절차나 물리적 인프라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으세요. 단순히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을 넘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 책임의 대행: 사용자가 가장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는 법적/행정적 책임을 서비스가 대신 져줄 때, 사용자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서라도 그 서비스를 선택합니다.
1인 빌더를 위한 전략적 리팩토링
만약 여러분의 서비스가 단순히 CRUD(Create, Read, Update, Delete) 기능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그 서비스는 언제든 복제될 위험이 있습니다. 코드가 공개되어도 당당하려면 비즈니스 로직을 기술이 아닌 권한 중심으로 리팩토링해야 합니다.
저 또한 현재 개발 중인 SaaS에서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관리 도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도구를 통해 생성된 결과물이 법적으로 어떤 보호를 받거나 공식적인 절차에 자동으로 제출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코드가 깃허브에 전체 공개된다 하더라도, 제 법인이 가진 공식적인 채널과 신뢰 자산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게 됩니다.
💡 Tip: 비즈니스의 해자를 기술에서 찾지 마세요. 기술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공유 자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특정 국가의 정부 API 권한을 획득하거나, 세무 대행 라이선스를 보유한 법인으로서의 지위는 복제가 불가능한 독점 자산입니다.
요약 및 인사이트 회고
검로드 사례를 통해 본 1인 창업가의 생존 전략은 명확합니다.
- 프로그램 코드보다 법적 허가와 행정적 책임 대행 능력이 훨씬 강력한 비즈니스 해자입니다.
- 글로벌 결제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결제 버튼이 아니라 세금 신고를 대신 해주는 MoR 지위입니다.
- 코드가 공개되어도 상관없을 만큼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세금, 법규, 인증)와 밀접하게 연결된 서비스를 설계해야 합니다.
오늘의 Action Item: 여러분이 개발 중인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단순히 코드의 논리 구조에만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만약 그렇다면, 그 논리 구조가 현실의 어떤 법적 권한이나 행정적 절차와 결합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코드가 털려도 사업은 망하지 않는, 진짜 비즈니스는 바로 그 연결 지점에서 시작됩니다.